
미우나 고우나 가족은, 가족입니다. 함께함으로 행복한 가족이 있고, 함께해서 불행한 가족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거리가 가깝거나 먼 것과 상관없이 건강하게 있어주길 바라는 것은 공통적인 희망이죠. 어쩌면 가족은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것이 더 애틋한지도 모릅니다. 가까이 있어서 시달림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보다 멀리 있어서, 자주 보질 못해서 애틋한 느낌을 받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만인에게 적당한 가족의 거리는 몇 글자로 정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Bran : You were protecting your family.「유원쏘리덴. 유워프로텟팅 유어풰믈리.」 가족을 지키려고 했었으니까. 주어는 대화의 상대를 가리키는 'You'입니다. 과거를 나타내고 있어서 'be동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잘못이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잘못을 했다기보다는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면 사과를 할 수 있겠죠. 반대로 그 객관적인 시선에서 좀 너무했다거나 잘못한 것 같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본인이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사과를 전하는 것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불의(不義)'일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 '정의(正義)'가 된다면 미안함은 생겨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발생한 그 시점에는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가 세월이 흐르고 그 때를 회상하는 시점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미안함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과는 정중하고, 진심으로 신속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도리일지 모릅니다만, ..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 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보는데요. 그 실수의 정도가 다를 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인데, 다행이 크게 한 건씩 터트려주는 것은 아니고, 사소하고 소소한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며 언제나 신속하게 수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수를 하는 것은 다음에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인생의 깊은 뜻이기도 한데요. 소소한 실수들이 반복될 때에는 때로는 저주인가 싶기도 하고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실수는 하는 것보다 사후에 이것을 되도록 바르게 수습하고 그것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잘 배워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데요. 실수는 당사자가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부족함으로 인하여 본의아니게 발생한 일이므로 수습하는 과..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부탁했습니다. 그 부탁의 수행 속도와 여부는 부탁한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수 있겠는데요. 터무니 없는 것을 부탁한다면 냉정히 거절을, 곤란한 부탁을 한다면 정중하게 거절을 해야 할텐데, 부탁이라는 것이 거절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어차피 하지 못할 것이면 거절하지 못해 머뭇거리면서 시간을 끌기 보다는 용기를 내어서 상대가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고 서로를 위한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로는 할 수 있는 일들도 부탁하는 이에 따라 거절하고 싶을 때도 있죠. 반대로 급한 일도 아니지만 내 일을 제처두고 바로 해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상대가 나에게 매우 호의적인 사람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이 엄청 많아 숨쉬는 것조차 ..

사람은 일생 동안에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모두 만나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고 크다고 할 수 있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한 사람들이라면 세상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주변만이 그가 보게되는 전부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유로운 삶이 아니기에 하루를 허우적대며 일만하다가 나이가 들어버린 어느날 자신의 인생을 보다 가치있게 살고 싶다고 느껴지게 되고 자신의 일상과는 달라서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길을 택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앞 길에 처음보는 새로운 것이 너무 많아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 헛살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죠. 또 다른 이는 이 새로움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게 되고 회춘(回春), 매일을 젊어진 기분으로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Ar..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누군가를 잘 안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표면의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실제로 나 자신을 아는 것보다 타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부담으로 다가가서는 안 되겠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알아간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가장 기본이 아닐까 싶은데요. 나 자신보다 잘 아는 만큼 그에 대해 배려하고 존중하며 따뜻함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Arya : I know death. He’s got many faces.「아이노우 데엣(ㄸ). 히즈갓 메니 풰이시스…」 나도 죽음은 알아.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지. 주어는 화자 자신인 'I'입니다. '알다'의 뜻을 가진 'know'와 무엇을 아는지 알려주는 목적어 자리에 '죽음'을 뜻하..

누군가에게 내가 아는 사람, 혹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상대방이 받아들이기에 보다 잘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그들에 관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라면 주관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해도 전달이 되겠지만, 정보를 원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상대라면 그에게 맞춰서 전달하는 것이 소통의 오류를 피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그들이 생김새는 어떠하고 성격은 어떠하고 나와는 무슨 일이 있었고 등 상대가 원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뒤에 마무리하는 표현입니다. Gendry : That’s what they’re like.「댓츠왓 데아 라잌.」 그게 그들이야. 주어는 3인칭단수 'That'으로 시작했습니다. 'that'은 대명사..

온실의 화초처럼 항상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비, 바람, 천둥, 번개, 우박, 홍수, 산사태 등의 악천후와 기상이변까지 누군가가 모두 막아주고, 오로지 좋은 것만 보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늘 최상의 조건과 최상의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stress 없이 살아 온 사람은 아마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나보다는 삶이 평탄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만, 아직 주위에서 그렇게까지 곱게자란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지구상에 어딘가에 소수로 존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와 같이 주위의 풍파와 소위 누구나 가지고 있을 우여곡절(迂餘曲折) 없는 사람들은 위기대처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에 조금의 시련이라도 닥쳐오면 쉽게 무너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섭고 두려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통틀어서 하나 정도 있다고 하면 매우 용감한 사람이거나 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자그마한 벌래 한 마리에도 놀라거나 겁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말벌이 미친듯이 주위를 날아다니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겁을 먹거나 두려워해야 하겠죠. 벌침에 쏘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말벌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지면에 붙어 있기만 한데도 두렵거나 겁을 먹을 수 있습니다. 주위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말벌을 맨손에 휴지만으로 잡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운이겠습니다. Gendry : And I know you’re not scared of rapers or murderers or…「..

몸을 가지고 육체적으로 치고박고해야만 싸움은 아닙니다. 싸움의 형태도 여러가지인데요. 자신이 처한 불행한 환경과 싸움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목표 앞에서 스스로와의 싸움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타인을 위해 그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대신 싸워주기도 하죠. 이와 같은 싸움에 때로는 인력이 많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니까요. 무엇과 혹은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족 혹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힘이 날 수 있을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그들 중에서 약자에 놓인 사람들을 이 싸움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정의를 가진 사람들의 당연한 행동일 것 같습니다. Gendry : Look, I know you want to fight.「뤀, 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