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필 '목적격보어'에 'murder'이 와서 표현이 살벌해졌는데요. 그 자리에 다른 원형부정사를 넣어서 다양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청자에게 하는 것은 아니구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청자에게 무언가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이야기하게 하다, 돕게 하다, 안내하게 하다, 알게하다, 묻게하다, 상처주게 하다 등으로 응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그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하게 했다면으로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닌 다른 상황을 가정하는 표현입니다. 아래는 그랬다면 어떠했을 것이다 까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Bran : If I let them murder you first.「입퐈이 렛뎀머더유 퍼스트.」 만약 내가 당신을 죽이게 했었다면, 'If + 주어 + 동사'로 시작하는 문장..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 곤란해 빠졌거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크게 힘든 일이 아니고 남에게 있어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해주는 것을 미덕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모든 것이 이렇게 쉽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도와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능력 밖의 일도 있고, 힘겹게 도와줬다가 욕을 먹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때로는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 있지만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다거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 타인이라서 외면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Bran : You won’t be about to help us in this fight.「유원비 어바웃투헬퍼스 인디쓰 퐈잇.」 그랬다면 이 싸움에서 우리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겠지. 주어는 대화 상대인 청자를 가리키는 'Y..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다보면 소소한 것에서부터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오해가 생기는 것은 대부분이 대화, 즉 소통의 오류 혹은 부재로 인해서 자주 생기는데요. 이 사소한 것이 꼬여서 큰 것이 생길 수도 있도 있습니다. 작은 오해가 생겼을 때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경우가 있고, 그냥 그 상태 그대로를 가지고 믿어버려서 오해를 안고 큰 덩이로 만들어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경우이고, 후자는 서로 서로에게 크게 관심이 없거나 딱히 알고 싶지 않은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엉켜있는 오해를 풀 수 있는 자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상대의 모습에 대해서 털어 놓다보면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거나, 그렇게 한 적이 없다거나와 같은 자신의 진심이 어긋나 ..

어떤 사람, 어떤 상황, 어떤 물건 등 사소한 것에서 부터 큰 건까지 사람은 누구나 좋지 않은 상황에서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고, 잘 참는 사람이 있으며,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감정 조절을 조금 더 해야 할 필요가 있고, 두 번째 사람은 너무 참다가 한 순간에 폭발할 수도 있으니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며, 마지막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있거나 아니면 엄청난 연륜(?), 여유(?)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연륜과 여유가 있어도 화는 나기 마련일텐데 어쩌면 엄청나게 크고 험한 경험을 살벌하게 많이해서 사소한 것에까지 화가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Bran : I’m not angry at anyone.「암놋 앤그뤼앳 에니모오.」 난..

대인관계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원만하길 바랍니다.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거나, 괴롭힘을 받거나, 화를 내거나, 화나게 하거나, 언쟁이 있거나 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보통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그 정도가 엄청 큰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은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는 참고 넘겨줍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너그러움도 있을 테고, 누구나 불편한 말을 전하는 것은 피하고 싶어 하니까요. 내가 생각해도 많이 미안한 잘못을 했을 때 사과는 그 마음이 들었을 때 빛의 속도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말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니까요. 엄청나게 화가 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아나요? 상대는 이미 용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Jaime : You’re ..

살아 있고, 어떤 방법으로든 숨쉬고 있는 존재들은 '태어나다' 혹은 '생겨나다' 다음으로 '자라다', 그리고 나이가 듭니다. '죽어가다', '시든다'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건 이 세상에서 함께 하는 마지막 순간에 쓸법한 표현들이죠. 누군가는 냉정하게 '태어나다', '생겨나다' 이후에는 죽음에 다가가는 일정의 연속이므로 '죽어가다'가 맞다고 하지만 이 표현에는 생기(生気)와 활력(活力)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것에는 '살아가다'가 더 어울리고 정확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완성해 나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을 '어른이 되어간다'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누구나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

어떤 집단의 어머니 모임에 가면 그 범위 안의 누군가의 어머니들만 모이게 되어 있는데, 세상 모든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살지는 않습니다. 어디서 보니까 엄마 없이 자라는 자식들이 마음 아파할까바 엄마 분장해서 모임에 나간 아빠도 있다고 하던데요. 아빠가 엄마 대신 참석 할 수도 있겠죠. 혹은 할아버지, 할버니, 삼촌, 이모, 고모, 아니면 다른 보호자가 대리 참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 모임에 엄마가 없다고 다른 보호자는 오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 같은데요. 이처럼 대부분은 엄마겠지만 엄마가 아닌 사람이 있을 때, 아래는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신나게 놀다가 돌아 왔습니다. 엄청 놀았다면 배가 고파지는 것이 당연할 텐데요.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은 아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살다가 보면 삶의 대부분을 혹은 통채로 바꿀만한 사건과 마주할 때가 있는데요. 이왕이면 삶이 피폐(疲弊)해지는 것보다 풍성해지는 사건을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삶의 큰 영향을 주는 이런 사건들은 모든 사람에게 적게는 한 번씩 주어지는 것은 아닌데요. 그런 상황을 마주하지 않고 일생을 소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의 나와 다른 나로 바꾸게 되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면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악독하게 바뀌는 것 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강인하게 여유롭게 성장했으면 하네요. Bran : And I would still be Brandon Stark.「앤다이 욷스띨비 브랜든 스탘.」 그리고 전 여전히 브랜든 스타크겠죠. 화자가 'And'라고 한 것을 보니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좋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받더라도 자신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면 고마운 일이죠. 반대로 좋지 않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다른 이들과 자주 부딪히면서도 바뀌지 않는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삶의 전환점'이라는 시점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어 있는데요. 힘듬 속에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와중에 불행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 때에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도 환경에 이끌려 쉽게 변해버릴 수도 있죠. 이왕 전환점을 만나야 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시점을 마주해서 예전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변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Br..

살면서 깨알 같은 후회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있다고 하면 사람이 아니거나 엄청난 굳은심지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후자인 사람들 중에는 다른 길도 없고, 어쩔 수 없다라고 하면서도 후회는 함께 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지도 모르죠. 수많은 소소한 것들과 아주 가끔 큰 덩이들의 후회와 함께 살아가는 저는 어쩌면 상당히 인간적일 수 있겠습니다. 땅을 칠 정도의 후회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사해야 할 수도 있겠죠. 후회의 뒤에는 발전이 뒤따라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과거의 부족함이 많았던 나 보다는 그것을 딛고 일어서서 더 멋진 사람이 된다면 쓰림만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Jaime : I’m not that person anym..